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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백과사전/세상돋보기

발렌타인데이선물보다 더 기억해야할 날 2월14일

by 담터댁 2020.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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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데이선물보다 더 기억해야 할 날 2월14일 

안녕하세요~ 사각이입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 남녀가 초콜릿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발렌타인데이가 3일 밖에 남지 않았죠?

그래서 발렌타인데이선물을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으실거예요.

그래서 사각이도 발렌타인선물에 대한 포스팅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문득 역사속 2월 14일에는 무슨일이 있었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역사 속 2월 14일>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보게 되었어요. 

 

근데 놀랍겠도 1910년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가 된 날이되라고요.

과연 우리가 발렌타인데이선물을 찾아헤메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자

발렌타인데이를 기다렸다는 사실이 부끄러움으로 제 얼굴을 화끈 덥히더라고요.

 

그렇다면 1910년 2월14일 안중근의사의 사형선고된 그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원래 러시아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지만, 1905년 을사늑약에 따라

조선인에 대한 재판 관할권은 일본에 있음을 주창하며, 거사 당일 안중근은

러시아로 부터 일본이 인계 받게 된다. 이 사실은 일본이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 했으며,

살인이 틀림 없다고 많은 역사 학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그렇게 1910년 2월 7일 부터 5차의 공판을 치뤄지는데 2월 14일 마지막 공판에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선고 된다. 

이 공판은 처음부터 안중근을 사형시킬 목적으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공소권을 포기한다.

안중근이 공소권을 포기한 이유는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안중근에게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니라" 전하였다. 

안중근은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을 시작하였다. 

당시 고등법원장 히라이시는 공소권을 포기한 대가로 안중근 의사가 집필하는 <동양평화>를 

완성할때까지 사형선고일을 미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그해 3월 26일 오전 10시15분 32세의 나이로 안중근의사는 순국한다. 

 

발렌타인데이선물을 챙기는 것보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안중근의사는 포로로 대우받고 만국공법에 의해 재판이 진행되어야 했지만,

일본이 대한민국의 사법권이 무참이 침탈당했음을 보여준다.

때무에 우리는 이날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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